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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정수 작성일 2006-07-10
제목 필리핀 농사꾼 된 전 데이콤 회장, 박운서 님! 조회수 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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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서(67)를 아십니까. 일명 ''''''''''''''''타이거 박''''''''''''''''. 호랑이 같은 근성과 추진력으로 유명한 전직 관료이자 거물 기업인입니다. 1994년, 행정고시 합격 28년 만에 통상산업부 차관이 됐습니다. 공직 퇴임 뒤에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으로 가 부실투성이 공기업을 여봐란 듯 살려냈습니다. 데이콤 회장 시절엔 또 어땠나요. 만성 적자이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놨습니다. 2004년 은퇴했지만 와주십사 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br><br>그는 거절했습니다. 쉬고 싶었습니다. 그만하면 열심히 산 인생이라 자부했습니다. <br><br>그런데 어느날, 그런 그가 사라졌습니다. 새 집 지으려 산 양평의 500평 대지, 노후 대비용이라던 골프장 회원권 3개, 찰떡 금실을 자랑하던 아내마저 남겨두고. 그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br><br>11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참으로 엉뚱한 곳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농부가 됐다 합니다. 바다 건너 필리핀, 전기 뚝뚝 끊기고 제대로 된 농기계 하나 없는 오지에서 논농사를 짓는답니다. 돈 더 벌려, 음풍농월 하려 그 먼 땅까지 갔을까요? 그럴 리가요. 그는 새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마음 가득 그들 생각뿐이라 떨어져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팔십까지는 건강히 살아야 할 이유를 비로소 찾았다고 합니다. <br><br>궁금증에 못 이겨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배 타고, 지프 타고, 오래 걸어서.<br><br>필리핀 민도로섬 칼라판 부두. 시계를 본다. 오후 1시13분. 약속한 시각보다 47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박 전 차관은 시간 지키려 애쓸 필요 없다고 했다. 2시부터 나와 기다리겠지만 5시쯤에나 만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고속버스건 페리건 딱딱 맞춰 바꿔 타기 쉽지 않은 곳이 여기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고속버스도 페리도, 딱딱 맞춰 와 주었다. <br><br>민도로는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 서남쪽에 있다. 필리핀에서 7번째로 큰 섬이다.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할 고트 산맥을 기점으로 오른쪽이 오리엔탈 민도로, 왼쪽이 옥시덴탈 민도로다. 박 전 차관은 제주도 2배 크기의 오리엔탈 민도로 남부, 로하스 부근에 산다고 했다. 정부군과 지주들이 고용한 무장 경호원, 그에 맞서는 사회주의 무장세력 신인민군(NPA.New People''''''''''''''''s Army)며 원주민인 망얀(Mangyan)족 사이 무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br><br>부두 밖으로 나섰다. 뜨겁다. 태양도 호흡곤란을 일으킬 법한 날씨다. 우기 직전인 6월 초.중순께가 가장 덥다 했던가. 우리나라로 치면 도청 소재지 급이건만 햇볕 피할 곳 하나 마땅치 않다. <br><br>급한 대로 부두 앞 간이식당에 들어갔다. 필리핀인 대여섯 명이 점심을 먹고 있다. 좀체 보기 힘든 이방인의 출현에 눈길이 확 쏠린다. 콜라 한 병을 시켜 놓고 엉거주춤 앉았다. 열댓 살이나 먹었을까, 주인집 딸이 입은 7부 바지가 눈에 띈다. 한글이 프린트돼 있다. ''''''''''''''''정지'''''''''''''''' ''''''''''''''''보행자 출입 금지''''''''''''''''. 요즘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스타일이란다. <br><br>박 전 차관과 어렵게 통화가 됐다. 그의 휴대전화는 하루 중 3분의 2 이상이 불통이다. 그만 해도 유선전화가 거의 없는 이곳에선 감사할 일이란다. 오후 2시, 그가 나타났다. 새까맣다. 그리고, 너무 말랐다. <br><br>키 174㎝에 65㎏이었는데 55㎏이 됐어요. 더워 그런가 봐, 허허.<br><br>그가 몰고 온 승합차에 올랐다. 2시간30분은 더 달려야 한단다. 그런데 뜻밖에 일행이 있었다. 그의 큰 아들 찬준(37)씨와 며느리 정효경(33)씨였다. <br><br>베트남에서 직장생활 하고 있는 걸 제가 지난해 말에 불러들였어요. 당최 혼자 감당할 수가 있어야죠.<br><br>아버지가 부르자 찬준씨는 두말 없이 휴직계를 내고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신혼의 며느리도 조용히 짐을 쌌다. 효경씨는 지금 임신 12주째라 했다. 내심 혀를 찼다. 식구들까지 이게 웬 고생이란 말인가.<br><br>글쎄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거든요.<br><br>어쨌거나 시작은 2005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br><br>친구들하고 부부동반 필리핀 골프 여행을 갔어요. 제 아내가 목사거든요. 2년 동안 지원해 온 선교지가 있다기에 한번 방문해 봤죠.<br><br>로하스 개척 교회를 둘러본 다음 산 속 망얀족 마을까지 가 보기로 했다. 솔직히 짜증나데요. 덥지, 교통 불편하지, 벌레들은 마구 덤벼들지…. 이런 데까지 끌고와 고생시킨다고 아내한테 신경질도 많이 냈죠.<br><br>하지만 로하스에서 다시 비포장 도로로 2시간, 차에서 내려 3시간을 걸어 들어간 산 속에서 그는 딴 세상을 봤다. <br><br>다 같은 사람인데 왜 저렇게들 살아야 하나 …<br><br>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개처럼 돼지처럼.<br><br>망얀족은 15세기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필리핀에 뿌리박고 살던 원주민이다. 스페인 지배 300년, 미국 지배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