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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영화 작성일 2018-06-07
제목 [답변]우울하지 않은 척 하는 우울증 조회수 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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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님의 글입니다. >
70대 중반 할머니가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병원에 왔다. 병원 근처 요양원에 입소하기로 했는데 건강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보호자가 할머니보다 먼저 진료실로 들어와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할머니는 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 작년 가을쯤 오랜 투병을 한 영감님을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시던 중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해서 자식들이 부랴부랴 병원으로 모셨는데 우울증과 더불어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여 살지 않는 지금은 집안에 노인 환자가 생기면 병시중하는 것이 큰 문제다. 다들 일이 있어 바쁜데 한 사람이 책임지고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동네마다 노인 요양 시설이 많아지고 있다.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부터 치매가 있어 24시간 돌보는 사람이 필요한 분들까지 요양시설을 필요로 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난다. 일종의 단체 생활이니 전염병이 없어야 입소가 가능하다. 입소 때 필요한 진단서는 폐결핵과 간염, 매독 등 전염되기 쉬운 질병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보호자에게 치매의 원인을 물었다. 우울증과 혈관성 뇌손상이라고 했다. 노인의 우울증과 치매는 초기 증상이 비슷해 구별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질병들이다. 그런데 내가 환자를 진찰하는 동안에 환자가 우울하다는 느낌을 조금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수치로 확인되는 건강 상태도 문제없었다.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을 내린 것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환자는 우울하지 않은 우울증,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울하지 않은 척하는 우울증(가면성 우울증)'을 앓았던 것이다. 영감님을 돌보는 중에도 이미 우울증이 있었던 데다가 먼저 보내고 난 후 혼자 사시는 동안에 악화되어 치매까지 생긴 것이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을 일으킨다. 식욕이 없어지고 매사가 귀찮아지며 자리보전하고 눕게 된다. 그럼에도 돌보는 사람이 없다면 줄초상 같은 큰일을 치를 수도 있는 것이다.

한집에 같이 산다고 꼭 원활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외당한다는 느낌만으로도 우울증은 쉽게 온다. 이때는 아주 작은 서운한 말이라도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우울한 감정을 숨기는 것이다. 별일 아닌 일에 자꾸 화를 내고 고집이 세지고 의심이 많아지는 것이 우울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성격 변화다. 가면성 우울증은 노인뿐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흔히 나타날 수 있다. 사춘기라고 치부하는 아이들의 엇나감이 사실은 우울증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가면성 우울증은 자기가 할 일이 없어졌다는 상실감을 느낄 때 더 나타난다. 자꾸 몸을 움직여야 그 병이 찾아오지 않는다. 손주들을 돌본다든지 반려동물을 키운다든지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집안의 사소한 일이라도 어르신의 의견을 여쭙는 것도 상실감을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따로 사는 오늘날의 우리는 1년에 몇 번이나 부모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만 해도 20번을 넘지 못한다. 앞으로 몇 번이나 부모님의 얼굴을 뵐 수 있을지 계산해 보면 좀 더 자주 부모님을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부산의 외국인 교수도 부모와 자주 화상 통화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님과 화상통화라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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