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영화 속의 헐크는 화가 나면 자신도 모르게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녹색으로 바뀐 괴물은 초인적인 힘을 내고 분노의 화신으로 변한다. 다행스럽게도 영화 속 주인공은 “착한 괴물”로 사람들에게 소위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제공하는 영웅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화가 나면 영화처럼 녹색괴물이 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화가 나면 그 에너지가 분노로 바뀌고 숨겨둔 자신의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이는 곧 관계를 깨뜨리고 후회를 불러오기도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충동적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개인적인 사건들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분노와 화를 표출하는 한국인의 정서는 최근에 비롯된 일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억압되어 왔던 분노와 상처가 억압의 시기가 지나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봉인 해제되어 다양한 욕구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분노와 더불어 사회적인 분노가 표출되면서 사회는 갈등과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있다. 개인은 화로, 사회는 분노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사회적 혼란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 대상이 이웃이든 지도자이든 관계없이, 자기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혔던 아니든 관계없이 서로를 미워하고 자신의 화와 분노를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그 미움의 손에 들린 것은 때로는 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촛불이 되기도 한다.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개인을 피폐하게 하는 분노는 다양한 형태로 개인과 사회를 흔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개인의 분노를 이해하고 조절하고 다루는 방식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인 ‘미움 받을 용기’에서처럼 불편함을 잘 다루면 분노를 넘어서 성장이나 성취로 이끌 수도 있다.
분노조절장애란?
분노는 사람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 중의 하나이다. 분노는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때로는 사회 전반에 공포를 주기도 한다. 개인의 분노를 넘어서 사회를 경악하게 하는 범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위협적 상황에서 생존을 돕는 가장 중요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조절장애(loss of control)는 통제력 상실과 관련된 장애로, 충동조절장애, 분노조절장애(감정, 정서조절장애) 등이 있다. 분노는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정서 중의 하나로, 분노조절이란 분노를 조절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분노를 억압이나 제거하는 것이 아닌 상대편을 해치거나 손상을 주지 않는 범위의 건강한 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화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불균형 상태로부터 평안을 회복해야하며, 분노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행하도록 하는 건전한 반응이 필요하다.
분노조절장애의 원인과 증상
일반적으로 분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나 도덕을 포함한 ‘자기 영역’을 공격받았다고 느낄 때 일어난다. 특히 공격을 한 사람이 그 가치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할 때 분노가 일어난다. 생각과 다른 결과로 그 과정이 틀어지고 어긋났을 때에도 분노에 휩싸인다. 모든 일이 계획한 것처럼 조화롭게 진행된다면 분노는 없을 것이다.
분노는 개인이 경험하는 불편한 사건이나 정서를 드러낼 때 경험하게 되는 ‘불편감’을 억압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억압’은 분노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데, 이렇게 강력해진 분노가 내면에서 내재될 때 고혈압을 비롯해 심혈관계 질환, 통증이나 암을 발생시키기도 하며,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관계 단절, 사회적 회피, 약물남용 등의 문제에 영향을 준다.
또한 분노가 밖으로 표출될 때 폭력 등 공격행동을 유발시키며, 성격장애,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품행장애 등 다양한 정신과적 질환에서도 과도한 분노감이나 공격행동이 주된 문제로 제시되고 있다. 우울증 환자들 중에도 상당수가 분노발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분노조절장애의 이해
분노는 인간의 기본 욕구와 관련이 있다. 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관한 것으로 가치판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단지 우리에게는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하느냐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이성’의 기능을 구속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극복되어야 할 주된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내면 욕구의 갈등을 담고 있는 것이 ‘분노’이다.
분노는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나타나며, 대부분은 격렬한 육체적 반응들을 함께 경험한다. 분노는 이성에 의한 절제의 과정을 거치기 이전에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보다도 분노를 느꼈을 때 그것을 감추기다 어려워진다.
분노에 대한 일방적인 억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분노에 대한 억압은 정서 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평소에 잘 견뎌내고 감정을 억압하는 성격의 사람들에게 분노는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분노를 무조건적으로 억제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는 개인의 욕구나 가치를 표출하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에너지의 충동적인 표출이 드러나는 순간에 그 에너지의 폭발력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다.
분노를 다루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분노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실제로 자신의 분노 에너지를 승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분노 에너지를 건강한 방법으로 변환하는 것은 심리학과 상담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분노조절 치료
분노조절의 치료는 기본적으로 순간의 감정을 지연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의 정서를 지연시켜 이성적 태도로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해와 방법으로 치료적 접근을 한다.
• 인지정서행동치료(REBT): 불안, 우울, 분노, 열등감, 시기, 질투 등의 정서반응을 주로 개인의 신념체계의 결과로 본다. 분노의 원인은 어떤 사건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 때문에 발생하며, 이로 인한 혼란스럽거나 파괴적인 정서는 논쟁을 통해 합리적 신념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 이완치료모델: 분노는 생리적인 각성 상태를 수반하고 이러한 신체적 긴장 상태가 분노를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분노 유발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적응적 대처를 어렵게 한다고 본다. 따라서 생리적 흥분이나 긴장 상태를 낮춰 주기 위해 다양한 이완 훈련 치료법들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이완 치료법에는 점진적 근육 이완 훈련, 자율 훈련, 심상 이완법, 호흡법, 체계적 둔감법 등이 있다.
• 사회적 기술훈련모델: 분노문제를 포함하여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이 대인적 기술 결함에 기인한다고 본다. 사회적 기술을 훈련시킴으로써 내담자들로 하여금 대인 관계의 갈등과 대인 기술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게 하여 분노문제를 대처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 통합 모델: 최근 여러 연구에서 분노 조절을 위한 효과적인 변인으로 입증된 인지, 정서, 생리적 요인, 행동적 요인을 따로 구분하여 각각에 대한 치료적 접근을 시행하는 것보다 각각에 대한 적절한 통합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명상이나 요가 등 다양한 신체 요법을 반영하여 정서조절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마치며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인이 겪는 어려움은 점차 가중되고 있다. 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조기퇴직이나 청년실업 등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넘어서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은 분노를 극대화하고 있다.
개인의 정신건강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나 충동적 살인, 자살 등 다양한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지만, 사회의 속성상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인드(힘)’를 가져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이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 사회갈등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분노조절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 감정과 문제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서로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게 된다.